2013-07-25

탄자니아와 케냐의 스와힐리어 사용 실태

케냐의 브로큰 키스와힐리
   탄자니아에서 1년 반 동안 거주하면서 스와힐리어 사용이 많이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고급 어휘에는 10% 남짓 다가간 듯하다. 아직 뉴스기사를 번역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정도로 스와힐리어도 단어가 무지 많다. 어쨌든 내가 한 번은 건강문제로 케냐에 열흘정도 머물렀던적이 있었다. 당시 심한 두통으로 나는 Kichwa kinaumwa.(머리가 아파요.)라고 말했고, 간호사가 되묻기를 Kichwa inaumwa?(머리 그게 아파요?) 라고 되물었다. 한국말로 예를 들어보면 '저사람, 그는 아프다.' 라고 표현은 할 수 있어도 '저사람, 저게 아프다.' 라고 말할 수 는 없다. '저사람'이 '저게' 라는 지시대명사로 대체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탄자니아인 이었다면 5살짜리도 하지 않을 실수를 했고, 그 간호사는 실수인지도 모르는 듯 보였다.

Mlinzi(음린지, 경비)라는 단어를 모르는 케냐인
   케냐에 가면 어느 나라보다 경비를 서는 사람이 많음을 목격할 수 있다. 작은 가게 앞에도 경비가 서서 지키고 있다. 워낙에 도난사고가 많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서는 귀중품을 모두 경비에게 맡겨야 한다. 돈, 컴퓨터 등등. 꽤나 오랫동안 이런 방식으로 해 온 듯 보였다. 우선 경비가 귀중품을 가지러 입원실에 방문한다. 그러면 주변 간호사가 같이 따라 들어와서 증인이 되어준다. 나의 돈을 나도 세어보고, 경비도 세어보고, 간호사도 세어본 후, 서로가 일치하는지 여부를 보고 기록노트에 남긴다. 그리고 종이봉투에 돈을 넣고 이음새에 증인과 나 그리고 경비의 서명을 넣은 뒤, 물에 넣어도 젖지 않을 만큼 테이프를 바른다. 케냐는 경비의 나라였다. 몸이 호전되어 퇴원수속을 밟을 때였다. 나는 간호사에게 경비를 만나고 싶다고 스와힐리어로 말했다. 'ninatafuta mlinzi.'(난 경비를 찾고 있어요.) 못 알아듣는 눈치길래, 다시 말했다. 'ninaomba kumkutana mlinzi'(나는 원합니다 경비를 만나기를.) 또 못 알아들어서 결국 영어로 말하니 그제야 알아들었다.

Bomba(봄바, 파이프)라는 단어를 모르는 케냐인
   탄자니아에서 Bomba라는 단어는 매우 다양한 의미로 쓰이지만 대표적인 의미는 파이프를 의미한다. 아직 상수도시설이 부족한 탄자니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물에서 펌프질을 해서 물을 얻는다. 우물을 팔 때 파이프가 엄청 들어가기 때문에 우물을 주로 Bombani(직역: 파이프가 있는 곳)라고 부르는 것을 보인다. 나이로비에서 케냐인과 잠깐 대화를 나누어봤다. '나는 탄자니아 시골에 살고 있고, 우물에서(bombani) 물을 길러온다.' 라는 구절에서 Bomba가 뭐냐며 나에게 되물었을 때, 단어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로비가 아무리 상하수도가 잘 되어있다고 해도 Bomba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은 충격이었다.

탄자니아에서 부족어 와 스와힐리어
   약 200여개의 부족이 탄자니아라는 영역에서 살고 있다. '어릴 때 대부분 자신의 부족어를 사용하며,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부터 스와힐리어를 배운다. 사실 이건 공식적인 이야기고 요새는 어릴 때부터 스와힐리어를 배우는 편이다. 그래도 수도권 및 대도시 몇 군데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어릴 때 자신의 부족어를 배운다. 그래서 스와힐리어로 자기들끼리 대화하더라도 서로 억양이 조금씩 다름을 잘 느낀다. 스와힐리어를 사용할 때 어릴 때 사용하던 부족어 억양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투로 자신의 고향사람임을 파악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난 나름대로 탄자니아 주요 도시와 그 도시를 중심으로 뻗쳐있는 시골동네까지 방문한 경험이 많다.(탄자니아 주요도로는 거의 다 지나가봤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겠다.) 시골에 가 보면 자기들끼리 부족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흔하게 목격할 수 있다. 아직도 부족에서는 그들의 부족어가 살아있었다. (나도 요새 부족어로 말을 가끔 거는 편인데, 현지인들이 너무 좋아한다.)

   탄자니아에서 스와힐리어의 위상은 다른 주변국과는 남다르다. 탄자니아인은 자신의 민족어로써 매우 사랑하며, 아낀다. 그리고 대중매체에서도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언어가 스와힐리어다. 드라마, 개그, 뉴스, 영화, 노래 등 많은 것이 스와힐리어로 제작되어 방영된다. 국회도 스와힐리어로 열린다. 이렇게 민족 공통어로 사용되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스와힐리어 교육은 지속된다.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스와힐리어를 잘 사용하고 발전시키는 나라인 것이다.

탄자니아에서 스와힐리어와 영어
   스와힐리어 교육은 우리나라 '국어'교육처럼 체계적이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중학교 교과서는 '언어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해서 단어들의 품사에 대해 모두 배우고, 그에 따른 세부 내용부터, 문학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영어는 어떨까? 중학교부터 스와힐리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은 영어로 가르치도록 규정하여 영어사용을 권장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정책이다. 나는 여기서 애들 물리과목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의 영어 이해도는 거의 0%에 가깝다. 일일이 단어 하나하나를 스와힐리어로 해석해서 가르쳐야만 알아듣는다. 이러한 행위는 스와힐리어 발전에도 방해가 되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모국어로 지식을 이해하고, 지식을 빠르게 재생산해야 국가 발전에도 큰 이익이 될 텐데, 정부는 영어교육 정책을 쉽게 바꾸려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 과학교육을 하면서 안타까운 교육환경을 다양하게 목격해왔지만 영어로 교육하라는 정책이 가장 안타까워 보였다.

결론
   케냐인은 mlinzi, bomba라는 단어를 몰랐다. 두 단어만이 아니리라. 또한 단어 사용에서도 조금씩 다른 표현이 사용된다. 하지만 외국인인 나로서는 그렇게 이질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아마 탄자니아인은 매우 다르게 느낄 것이다. 탄자니아에서는 스와힐리어교육이 잘 되고 있고 다양한 매체에서 스와힐리어 사용이 원활하여 정부정책만 좀 바뀐다면 스와힐리어 발전에도 더욱 많은 기여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주변국에도 큰 파급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정규 교육과정을 스와힐리어로 소화하도록 바꾸어 사용을 더욱 장려한다면, 그 언어로 만들어진 정보의 양도 이전과는 다르게 증가할 것이고, 이는 주변 국가가 스와힐리어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세계 12대 언어 중 하나로 자리 메김하고 있는 언어인 만큼 스와힐리어의 미래를 쥐고 있는 탄자니아의 올바른 선택이 필요할 때다.

   주변 국가라고는 케냐밖에 못 가봐서 주변국의 실태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실제 언어로써 활발히 사용하는 국가는 탄자니아와 케냐 정도며, 탄자니아 국경지역 일부가 포함될 뿐이다. 콩고, 부룬디, 르완다, 우간다. 마다가스카르, 모잠비크, 잠비아, 말라위를 방문해보면 아마도 스와힐리어가 어디까지 뻗쳐있는지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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