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8

어른이 되면 오븐을 사겠다고 생각했다.

  난 어른이 됐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서른여섯. 이제 서른여섯도 6개월 남았다. 어릴 때, 누구나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어른이 되니 어린 시절이 그립다. 얼마나 간사한가.

  아침에 피자를 구우려 밀가루 반죽을 하고, 토마토소스를 만들고, 채소를 썰면서 어른이 되고 싶었던 그때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릴 때, 엄마가 쓰던 부엌에는 가스렌지 2구짜리와 허름한 싱크대가 있었다. 아마 초등학교 1~2학년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듯 나는 요리를 좋아했는데, 시간이 나는 날에는 라면 끓이는 것을 좋아했다.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가스렌지가 높아서 무언가 밑에 딛고 올라가 라면을 끓였던 것 같다. 그리고 조금 더 커서는 빵을 만들겠다며, 밀가루로 이런저런 것을 만들려 애썼던 기억이 있다. 빵을 엄청나게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TV에 나오는 요리 프로그램에서 가끔 빵이나 카스테라 만드는 방법을 보여주곤 했는데, 그 모습이 신기해서 빵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항상 실패했는데, 그 당시에도 그 원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나에게는 이스트가 없었다. 그리고 슈퍼마켙에서도 이스트를 팔지 않았다. 아니지.. 팔지 않았거나 내가 못 찾았을 것이다. 오븐도 없었다. 당시에 가정집에 오븐을 가진 집이 내 기억엔 없다. 게다가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이의 팔로 머랭을 만드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어른이 돼버린 나도 머랭을 만들고 나면 팔이 아파져 오는데, 당시 머랭을 만들어 보려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계란과 싸웠는지 모른다. 이번엔 되겠지, 이번엔 될 꺼야. 그렇게 '이번엔 될꺼야'를 몇 년을 되뇌며 시간이 생길 때마다 머랭을 만들어보려고 애썼다. 왜냐하면 TV 속에 요리사는 잘했으니까.

  아무튼 당시 나는 어른이 되면 오븐을 사고 말겠다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화덕을 만들겠다는 소망이 있다. 갑자기 웃음이 터진다. 생각해보니 정말 오랜 시간 오븐에 집착하며 살아온 나 자신이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제빵에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살아온 것도 아닌데, 머릿속에 지우지 않고 유지하며 살아왔다는 것이 참.